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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오기, 맨발, 저물어가는 강마을에서, 뻘 같은 그리움 / 문태준

Life Talk/Book

by Wono`s Travel Talk 2010. 12. 29.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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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다이어리를 정리하다가 다이어리에 적힌 시집 몇 편을 발견하고 이렇게 올려봅니다.
해마다 시집 몇권씩 읽는데...
그중에서 문태준씨 시집 맨발중에 다이어리에 적은 시들을 올려볼께요.

일단 이 작가님 정말 친근해 보이더군요.
시집 프로필에 나와있는 해맑게 웃는 사진이 옆집 동네 아저씨 같은 편안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니다 다를까 자연을 노래하는 싯구절 하나하나가 맑다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자연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시들을 좋아해서 그런지 더 와닿았던 것 같네요.



따오기

논배미에서 산그림자를 딛고서서
꿈쩍도 않는 
늙은 따오기 
늙은 따오기의 몸에 깊은 생각이 머물다 지나가는 것이 보입니다.
어느날 내가 빈 못을 오도카니 바라보았듯이
쓸쓸함이 머물다 가는 모습은 저런 것일까요
산그림자가 서서히 따오기의 발목을 흥건하게 적시는 저녁이었습니다.



맨발 

 어물전 개조개 한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
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
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
을 거두어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
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
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저물어가는 강마을에서 

어리숙한 나에게도 어느 때는 당신 생각이 납니다
당신의 눈에서 눈으로 산그림자처럼 옮겨가는 슬픔들

오지항아리처럼 우는 새는 더 큰 항아리인 강이 가둡니다

당신과 나 사이 
이곳의 어둠과 저 건너 마을의 어둠 사이에 
큰 둥근 바퀴 같은 강이 흐릅니다

강 건너 마을에서 소가 웁니다
찬 강에 는개가 축축하게 젖도록 우는 소를 어찌할 수 없습니다
낮 동안 새끼를 이별했거나 잃어버린 사랑이 있었거나 
목이 쉬도록 우는 소를 어찌할 수 없습니다
우는 소의 희고 둥근 눈망울을 잊을 수 없습니다

어리숙한 나에게도 어느 때는 당신 생각이 납니다



뻘 같은 그리움

 그립다는 것은 당신이 조개처럼 아주 천천히 뻘흙을
토해내고 있다는 말
 
 그립다는 것은 당신이 언젠가 돌로 풀을 눌러놓았었
다는 얘기

 그 풀들이 돌을 슬쩍슬쩍 밀어올리고 있다는 얘기

 풀들이 물컹물컹하게 자라나고 있다는 얘기



글 하나하나에 담긴 많은 의미들이 때로는 내 얘기 같고, 
때로는 동네아주머니 수다같이 이것저것 들으면서 많이 배우는것 같습니다. 
추운겨울 시집을 다시 한 번 정리 하면서 마음이 따듯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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