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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일기 1 / 바오밥의 추억 - 마종기

Life Talk/Book

by Wono`s Travel Talk 2011. 9. 27.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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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날씨가 너무 좋아 가을이 왔음을 하루하루 느끼게 되네요!!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 마종기시집에서 가슴에 와 닿는 시 몇 편 올려볼까 합니다.

포르투갈일기 1

돌아서 오느라 좀 늦었을 뿐인데
도시는 벌써 바다를 지나쳐버리고
나는 지브롤터를 거쳐 도착했다.
나보고 지금 외롭냐고 물었나?

항구에는  비가 헤매고, 가로등 하나 없는
자갈 포장길을 줄줄이 내려 가서
어두운 지하 식당에서 저녁을 받았지만
생선 요리에 허기진 밥까지 놓고도
습기 찬 화도의 음악에 목이 메었다.

망토를 두른 늙은 가수는 뒤돌아서서
노래를 하는 건지 한숨으로 우는 건지
아니면 밤비가 노래를 적시는 것인지
돌보다 무거운 비에 내 몸이 아파왔다.
나보고 지금 외롭냐고 물었냐?

물론이다. 나도 한때는
주위의 인간을 뛰어넘으려고
장대를 길게 잡고 높이 뛰었다.
부끄럽지만 그때 눈을 빛내며
내가 내려다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좀 늦었을 뿐인데, 돌아온
항구에는 드문드문 긴 밤이 서 있고
졸음 가득찬 자갈 포장길이 중얼거리며
노숙에 지친 나를 앞서 가고 있다.



추억


왜 그렇게도 매일 외울 것이 많았던지
밤샘의 현기증에 시달리던 나이,
큰 바오밥 나무를 세 개나 그려
소혹성 몇 번인가를 가득 채워버린
그 그림 무서워하며 헐벗은 날을 살았지.

그 후에 가시에도 많이 찔리고
허방에도 많이 빠지고
녹슨 못을 잘못 밟아 피 흘리면서
창피한 듯 눈치껏 피해만 다녔지.
나는 그렇게 살아냈어. 너는?

하느님이 제일 처음 심었다는 나무.
뿌리가 하늘을 향해 물구나무 선 채로
늙은 의사가 되어서야 지쳐서 만난
아프리카 초원의 크고 못난 다리,
안을 수도 없어 어루만지기만 했는데
밀가루 같은 추억이 주위에 흩어졌어.

밥이 되는 열매와 야채가 되는 잎,
나이테도 아예 없애고 둥치만 커지는
주위로는 대여섯 개 문이 닫혀 있는데
안내원은 더위에 덮인 목소리를 뽑으며
이것이 아프리카의 수장(樹葬)이라고 했지.

 큰 바오밥을 만나니 무섭기보다는 목이 메인다. 둥
치를 뚫고 나무에 구멍을 만들어 시체를 그 속에 밀어
넣고 핀막이로 입구를 못질해 막으면, 열대의 초원에
우뚝 선 바오밥은 시체를 잠재워준다. 못질한 막이도
어느새 구별되지 않는다. 천 년 이상 이렇게 사람을
안아주었으니 얼마나 많은 시체가 한 나무에서 살다가
나무가 되었을까.

나무가 되어버린 인간들은
남은 살과 피로 열매를 만들며
추억을 수액에 섞어 마신다.
인간이 나무 속에 들어가는 동네,
잡초까지 이상하게 물구나무선다.
둥치의 긴 척추가 우리들의 날같이
귀환의 낮과 밤을 비추어준다.
축복처럼 아프게 행복하다.



요즘 바쁜 일상속에서 시 한편이 마음의 위로가 되어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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